오피니언
딥페이크, 디지털 증거의 믿음이 흔들린다
AI 딥페이크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법정에 제출되는 디지털 증거의 신뢰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디지털 증거 무결성 검증 체계 법제화와 딥페이크 범죄 가중처벌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

AI 딥페이크 기술이 법정 증거까지 위협하고 있다. 영상·음성·사진 등 디지털 증거를 정교하게 위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면서, 사법 체계의 근간인 '증거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현행법, 딥페이크 증거 조작 걸러낼 장치 없다
문제는 현행 사법 체계가 딥페이크를 판별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법원에는 딥페이크 감정을 전담하는 공인 기관도, 표준화된 감정 기준도 없다.
형사소송법상 디지털 증거는 '원본과의 동일성'이 인정돼야 증거 능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 조항은 단순 파일 복사·변조를 전제로 설계된 것으로, 원본처럼 보이는 딥페이크를 걸러낼 장치가 없다. 최신 딥페이크 기술은 이미 디지털 포렌식 탐지를 우회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게 보안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딥페이크를 이용한 증거 조작은 현행 형법 제155조 증거위조죄로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AI 기술을 악용했다는 점을 별도로 가중하는 조항이 없어 처벌 수위가 일반 증거위조와 동일하다.
◇고등보안원 "해시값 인증 의무화 법제화해야"
보안 싱크탱크 고등보안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 수사기관의 디지털 증거 수집 절차는 딥페이크 위변조를 사후에 탐지할 수 있는 기술적 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는 디지털 증거가 수집되는 순간부터 법정에 제출되는 순간까지 위변조 여부를 추적할 수 있는 체계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핵심은 해시값 인증 의무화다. 해시값은 파일이 조금이라도 변형되면 전혀 다른 값이 산출되는 고유 식별코드로, 사후 위변조를 원천적으로 탐지할 수 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디지털 증거 수집 단계에서 수집 시각·기기 정보·해시값을 자동 기록하는 시스템을 이미 도입하고 있다.
고등보안원 보고서는 "수사기관이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는 순간부터 블록체인 기반 무결성 인증을 의무화하지 않으면, 법정에서 모든 디지털 증거가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등보안원 "딥페이크 가중처벌 특별법 제정 촉구"
고등보안원 보고서는 기술적 대응과 함께 딥페이크를 활용한 범죄에 가중처벌 조항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딥페이크로 무고한 피의자를 범인으로 만들거나 실제 범죄자가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행위는 사법 정의 자체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임에도 현행법상 일반 증거위조와 동일하게 처벌받는 데 그친다고 지적했다. 이어 AI 기술 악용을 별도 가중 요소로 법에 명시하고, 딥페이크 감정 전담 기관 설치를 함께 입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딥페이크 기술은 이제 스마트폰 앱 하나로 누구나 쓸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법과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법정의 디지털 증거는 점점 더 불안한 토대 위에 서 있다.